폼포코 만물상

'짱구는 못말려 : 어른 제국의 역습'을 보고

숨의 숲 2016. 9. 25. 17:15

마루에 누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스르르 잠들었던 시간,

그리고 머리를 누였던 너무나 편했던 할머니의 무릎

한여름 냇가에서 신나게 물놀이하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냉큼 달려가 맛있게 먹었던 노란 삶은 옥수수

아빠 그리고 동생과 함께 뒷동산을 한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에 함께 마셨던 시원하고 달달한 바나나우유

너무나 맛있어 점점 줄어드는 바나나우유는 어린 나를 꽤나 슬프게 하였었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그리운 기억들…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원제 - 크레용 신짱: 폭풍을 부르는 모레츠! 오토나 제국의 역습)"은

고되고 숨 가뿐 현실속에서 언제부턴가 잊혀졌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줄거리를 간단히 얘기하자면

켄이 이끄는 yesterday once more는 21세기를 삭막하고 메마른 세상으로 규정하고

'20세기 냄새'를 통해 일본을 20세기로 되돌리려 한다.

'20세기 냄새'는 신형만을 비롯한 어른들을 과거에 사로잡히게 하여 지금을 잊게 만든다.

하지만 신형만(짱구아빠)의 '발냄새'로 깨어난 짱구네 가족이

켄의 계획을 저지하며 다시금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20세기는 매우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불필요한 것들은 없는 정감넘치고 고즈넉한 모습으로 말이다.

켄은 '아직 마음을 갖고 살아가던 시절'이라고 20세기를 표현한다.

상대적으로 21세기는 추하고 더러우며 사람냄새가 없는 곳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영화에서 말하는 21세기의 모습이 어떠한지 잘 알고있지 않을까 한다.

점점 줄어드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들, 결국 낙오된 사람들은 비졍규직 사이를 헤매이며 방황한다.

그나마 들어간 직장 또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내 동료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곳이며 언제 나오게 될지 알 수 없다.

병적인 사교육으로 아이들의 마음은 죽어가고 있으며, 그 아이들 또한 경쟁사회라는 정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웃간의 벽은 점점 두터워지고, 다른 누군가가 사고를 당해도 내가 아니면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밤새 열심히 일하고 저축을 해도 작은 내집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시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져 버린 시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름다웠던 과거에만 얽매여 살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삶일까?

 


과거의 냄새로 어른아이가 되었던 신형만을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발냄새였다.

발냄새 그것도 지독한 발냄새 말이다.


매일같이 덜깬 눈으로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 상사의 잔소리를 참아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런 하루하루가 쌓여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지만,

가족이 있기에 무너지지 않고 다시금 힘을 내 일어서서 또 하루를 걸어가는,

바로 그 발바닥의 냄새 말이다.


그 발냄새를 통해 깨어나는 신형만의 회상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보고 있는 동안 내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켄은 20세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가 이상으로 삼고 있던 저녁노을마을은 언제나 해 질 녁이며,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결국 영화 세트장의 한 장소일 뿐이니 말이다.

 

켄은 짱구네 가족에게 얘기한다.

"너희들이 정말로 21세기를 살아가고 싶다면 행동하게, 미래를 손에 넣어보아라"

 

 

켄이 20세기 냄새를 통해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으로 바꾸길 원했다면,

자신이 타워 꼭대기의 버튼을 눌러 전국을 20세기 냄새로 가득차게 하겠다는 말을 짱구네 가족에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20세기 냄새' 발사 버튼을 누르기 위해 타워 정상에 올라 계단 밑을 내려다 보는 켄의 눈빛에서도 그러한 마음이 엿보인다.


켄 또한 현재가 아무리 추하고 더러운 곳이라 해도 과거에 얽매여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난 가족과 함께 미래를 살아갈거야." 그리고 신형만의 이 말에 모두가 굳세게 동의하는 가족들

이에 대해 켄은 시시한 삶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신형만은 외친다.

"내 인생은 시시하지 않아. 가족이 있는 기쁨을 당신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을 정도야!"

 

 

켄을 저지하기 위해 탑 정상으로 뛰어가는 짱구네 가족들,

넘어지고 다치고 하지만 다시 일어나 켄을 저지하려는 짱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넘어지며 올라갈 수록 거칠어지는 짱구의 그림체 또한 인상적이었다.)


켄은 이러한 짱구네 가족의 모습을 TV를 통해 저녁노을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으며,

이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갈 마음을 주었다 생각한다.

켄은 마음 속 깊이 짱구네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결국 20세기 냄새는 사라지고 yesterday once more의 계획은 실패한다.

이에 켄과 챠코는 저녁노을마을 사람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자살을 시도하려 한다.

하지만 이때 짱구는 그들에게 소리친다.


"치사해!"


어쩌면 그말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ps. '어른 제국의 역습'을 접하게 해준 우리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