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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이야기

권리와 의무에 대해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생각

1.
노숙인 사회복지영역에서 처음 활동했던 때가 2007년 1월이었으니,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을 이곳에서 일해 온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 나름 감회가 있다할까. 지금에 비해 많이 적은 급여, 근로기준법 준용과는 거리가 먼 초과근무와 열악한 근무환경, 노숙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그리고 질적 양적으로 부족한 노숙인 사회복지서비스 등… 지금 돌이켜보면 나 같은(?) 사람이 그러한 환경에서 그러한 격무를 감당하고 왔는지 대견스러운 마음이다. -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최근 우리 센터의 경우 근무조건이나 환경이 많이 좋아져 전반적으로 근무환경에 만족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물론 아직 사회복지영역은 개선되어야 할 숙제들이 많이 남은 것 또한 사실이며, 서울시 외 타 지역의 경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조건에서 근무하는 곳도 많다 한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우리들의 불편한 모습 중 하나이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굳어진 행정편의적인 모습 중 하나랄까. 그 작은 행동하나가 어려움을 안고 찾아오는 노숙인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이야기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음도 해서 글을 끄적여 본다.

 

 

2.
손이 더러우면 우리는 비누를 사용하여 깨끗이 손을 씻는다. 한여름 뙤약볕아래서 열심히 일하고 땀으로 뒤범벅되면 우리는 보통 몸을 깨끗이 씻어야 개운한 마음이 든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당연한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 (물론 개인차는 있을 것이지만)

 

(당연한 얘기이지만) 노숙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노숙생활로 수개월간 목욕을 하지 않았다 해도 거리가 아닌 공공장소 예를 들면 사회복지시설, 식당, 은행 등에 서있게 되면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상태를 알기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결국 주변사람들의 눈초리에 대한 불편함과 스스로 갖게 되는 수치심으로 그 자리를 떠나 다시 거리로 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노숙인들을 위해 기초편의서비스인 목욕서비스(목욕실, 수건, 비누제공 등)를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우리 센터의 경우 목욕서비스를 하루 100명이 이용한다 가정해보자. 그러면 수건을 적어도 100장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수건을 60장 정도만 준비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적지 않은 분들이 수건대여를 희망하고 있는데 말이다. 담당자의 답변은 수건이 없으니 다른 사람이 사용했던 수건을 사용하라 한다.

 

이유를 보니 노숙인이 수건을 빌려가 반납하지 않은 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노숙인은 센터 목욕실 안에서 뿐만 아니라 거리생활 중 수건이 필요하기에 반납하지 않고 슬쩍 가져가신 것이다. 하지만 담당자는 수건을 계속 채워 넣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채워 넣어봤자 계속 가져가며 그 수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보통 한두 달에 한두 번 80~90장 정도로 채워 넣고 부족해지는 수는 노숙인이 가져갔기에 노숙인의 책임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니 수건이 없는 분은 다른 분이 사용했던 수건을 재활용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건을 노숙인이 훔쳐갔으니 그에 따른 불편을 다른 노숙인이 감당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담당자 이야기로는 수건을 가져가지 말라 많은 공지를 했다 한다. 그럼에도 계속 분실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러한 제재를 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이야기이다. 음… 괘씸죄 혹은 연좌제인가?

 

사실 노숙인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업무상 고충은 적지 않다 할 것이다. 많은 업무량과 더불어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노숙인과의 상담에서 사회복지사들은 심한 두려움과 압박감을 느끼곤 한다. 실제 언어적 혹은 신체적 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사회복지사들 또한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일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사회복지사 스스로 매우 수동적인 자세로 노숙인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누구를 탓하려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모두에게 좋은 최선의 방법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논의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다른 분(예를 들면 타사회복지시설, 컨설팅업체 등)의 도움을 구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 (물론 이는 매우 귀찮은 작업일 것이다)

 

한 노숙인시설도 우리와 같은 고민이 있었다 한다. 오랜 회의 끝에 수건대여보증금제도(?)를 도입하였다 한다. 보증금을 받고 수건을 대여하고, 수건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보증금은 노숙인도 부담 없는 금액인 100원 - (예전에 물어봤을 때 100원이었지만 지금은 확실한 금액을 알 수 없다) - 이었다. 이를 통해 수건 분실률을 많이 낮추었다 한다. 물론 분실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분실은 가져가신 분이 잘 사용하실 거라 좋게 마음을 먹고 있다 얘기도 하였다.

 

 

위에서 말한 수건과 같은 경우들이 우리들 현장 곳곳에서 적지 않게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우리 센터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며, 사회복지현장만의 모습도 아닐 것이다. 가정, 학교, 공공기관, 자영업 현장, 기업 등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 혹은 조직에서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3.
우리 사회복지사들도 노동자이다.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어려운 일터에서 우리의 권리를 누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는 소홀해졌다 생각한다. 물론 사람이기에 의무에 대해 소홀할 수도 있다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의무는 노숙인의 권리 즉 노숙인의 인권과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수건이 하나 없는 것일 수 있으나, 노숙인에게는 인간으로서 수치심과 부끄러움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