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른 아침 센터에 도착하니 벌써 모포 패킹작업과 매트작업을 마무리하신 자활선생님들과 당직선생님께서는,
땀범벅으로 아침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네, 이른 아침이라 해도 너무 찌는 날씨입니다.
곧 있으니 해충방역팀이 도착하시네요…
주간운영선생님의 고생과 고민으로 작업된 매뉴얼에 따라 센터 전층 작업을 진행하는데, 역시나 땀이 비 오듯 합니다. 2시간 여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린 작업을 완료하였으며, 조금은 덜 시원한 음료수로 서로의 수고에 고마워했습니다.
지하 세탁실에서는 두 분의 선생님께서 모포세탁과 고온살균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른 아침부터 말이죠.
3, 4, 5층의 모포를 전부 내렸는데 그 양이 상당합니다.
2.
문득 생각 하나를 해봅니다.
(생뚱맞을 수 있겠지만 말이죠)
계급과 권력은 높고 많을 수록 깡패라 합니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계급과 권력에 따라 인간에 대한 대우가 현저히 차이나고 말이죠. 뭐 어떤 이는 국민을 개 돼지로 비유하기도 했고,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들이 우리 사이에 번져 체념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러한 모습은 노숙인사회복지현장에서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 크기나 질감은 다르겠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중 행정 편의주의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귀찮고 작아 보여 무시했던 노숙인들의 요구가, 당사자분들에게는 매우 크고 심각했던 문제들이었던 사례들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지 싶습니다. 노숙인들은 작은 요구 하나 용기를 내어 이야기해야 하는데, 우리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그들을 튕겨내었던 것입니다.
내가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싶은 것처럼, 다른 이도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싶고. 내가 불편한 것이 싫은 것처럼, 다른 이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그리고 내가 해충이 나오는 잠자리에서 잠을 자고 싶지 않은 것처럼, 다른 이도 그렇겠죠.
부끄럽지만 저 또한 행정편의적인 모습을 부지불식간에 보이고 있습니다. 반성합니다.
3.
엇 11시 48분! 벌써 점심시간입니다. 밖에 나가 도시락 3개를 사와야겠네요. 도시락은 세탁실 자활 두 분과 제 것입니다. 나가서 먹을까도 생각했는데, 모포 작업 중 센터를 비우는 것도 뭐해 그냥 사오기로 했습니다.
날이 정말 덥습니다. 그리고 매해 날은 더 더워지겠죠. 걱정입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 노숙인복지현장에서 고생하시는 활동가분들의 노고가 있기에 노숙인을 비롯한 어려운 분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올여름 초 우리 센터에 빈대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빈대? 요즘 세상에 무슨 빈대야? 라고 생각하시겠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센터 잠자리를 이용하시는 아저씨들이 등, 팔, 다리 등에 벌레 물린 자국을 보여주며 무언가 벌레가 있는거 같다 하였을 때, 우리 센터 몇몇은 그냥 모기 아니에요? 라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습하고 더웠던 올 여름 갑자기 위와 같은 벌레 물린 것에 대한 민원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태를 심상치 않게 여겼던 주간운영선생님께서 살충제를 구입하고 자체 방역을 진행하였습니다.
처음 방역 후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질 않아, 추가 방역을 진행하구요.
이때까지 저는 그렇게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방역을 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말입니다.
추가 방역 후 다음 날 아침, 전날 잠자리를 이용하셨던 아저씨 한분이 팔, 다리에 벌레 물린 자국을 보여주기 전까진 말이죠.
뭐지? 빈대?
저는 빈대에 대해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심각성을 그제야 깨닫기 시작했죠.
(빈대에 대한 정보는 인테넷을 통해 빈대 퇴치라고 검색해 보시면 쉽게 알 것입니다)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간운영선생님을 비롯한 직원 몇몇이 팀장에게 보고하고 문제가 심각하다 계속 얘기를 하였으며, 자체 해결은 불가능하다 판단하고 방역업체를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방역업체를 알아보면서 저희는 또다시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방역업체에서도 빈대를 100%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였습니다. 어떤 업체들은 빈대 방역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 하고 말이죠. 그만큼 잡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나 저희 같은 노숙인이용시설에서 빈대의 외부유입을 어떻게 막을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옳은 말이었습니다.
어쨌든 해충방역업체 한곳을 선택하여 총 2회에 걸친 방역작업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2회를 진행하기로 한 것은 1회 방역 시 현재 있는 빈대 성충을 잡고, 2회 방역 시 알에서 깬 유충을 잡기 위한 것입니다.
(빈대 알은 6~17일 안에 부화한다 합니다)
맨 위 글은 2차 방역 후 쉬는 시간에 제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입니다.
2차 방역을 진행한 후에도 여전히 빈대는 존재하며 아저씨들을 물고 있습니다. 물론 그 빈도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생존하고 있는 것이죠. 대단한 생명력으로 제가 볼 때 바퀴벌레보다 한수 위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시에 이 사실을 알리고 방역사업비를 추가 받기로 하였으며, 매월 정기 방역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빈대 수를 대폭 감소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도 저희는 빈대 해결을 위한 고민 중입니다.
빈대와의 전쟁, 이제 시작인 것입니다.
'서울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대 예방 그리고 퇴치에 대하여 (0) | 2017.09.13 |
---|---|
빈대를 알아야 빈대를 잡을 수 있다? (0) | 2017.08.21 |
권리와 의무에 대해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생각 (0) | 2017.03.10 |
영화 '왕초와 용가리'의 한 장면이 마음에 남아 (0) | 2017.02.03 |
모든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0) | 2016.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