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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이야기

모든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서울역 광장을 지나다 보면 거리에서 술을 마시거나 누워있는 노숙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 썩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요. 아마도 대부분은 별 생각 없이 (자신과 별 상관없는) 그들을 지나쳐 지나갈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생각이 드는지 질문을 해본다면 어떨까요?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노숙인은 왜 노숙을 할까요?” 라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답변을 하게 될까요? 언젠가 TV에서 한 시민이 기자의 (위와 같은)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 떠오릅니다.


“일자리가 없으니 노숙을 하는 게 아닌지요. 일자리를 제공하면 노숙을 왜 하겠습니까.”



대다수의 시민이 위 시민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찾아보면 어디에나 일자리는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기대에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 일을 통해 충분히 거리를 벗어나 생활할 수 있다. 결국 노숙인이 노숙을 하는 것은 본인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노숙의 책임은 노숙인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물론 틀린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우리 사회 안에 깊게 뿌리내려진 일에 대한 개념으로 본다면 말이죠.

보통 우리 혹은 어르신들이 일하지 않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핀잔을 주고 있지 않은지요.

“사지 멀쩡한 사람이 일 안하고 뭐하냐?”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일시보호시설이나 쉼터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중 많은 분들이 열심히 일을 하시고 저축도 하시며 미래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또한 거리 노숙을 하는 분들 중에도 건실 일용직에 참여하시며 자기 생활을 해나가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노숙인들은 일자리가 있음에도 일을 하지 않는 분들이 아닌 겁니다. 물론 오랜 노숙생활로 인해 몸과 마음이 상하여 일을 할 수 없는 분들 또한 적지 않긴 합니다. 하지만 대대수의 노숙인은 현 노숙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같이 고군분투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요? 주변에 들어보면 (구직난도 심하지만) 구인난이 심하다 하니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닐 테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노숙인들 또한 일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계시다 하였죠. 그럼 당연히 노숙인의 수는 줄어들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고 말입니다. 생각보다 일자리가 구직자에 비해 적은 건지, 아니면 노숙인들이 생각만큼 일을 구하려 하지 않는 건지 의문이 들지 않겠습니까.



답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숙 상황으로 내몰린 50대 중반 A씨(남성)의 대략적인 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A씨는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자랐다. 초등교육 한번 제대로 받아본 적 없이 상경하여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한 공장에 취업하여 장기간 근로를 하였고, 목돈도 마련하였다.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공장 부도로 10년 가까이 일했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말았다. 동업종의 타 공장 취업을 알아보았으나 자신이 일했던 곳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결국 건설일용직을 통해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허리를 심하게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장 생활비가 없어 건설일용직을 나갔지만 허리는 더 심하게 아파왔다. 속이 상해 술을 찾게 되었고, 그 양은 점점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부부싸움도 많아 졌다. 어느 날 부인과 아이들은 자기를 떠나 버렸다. 술은 더 늘어났고 결국 생활비가 떨어져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가족도 지인도 없었다. 그렇게 거리생활을 한지 벌써 5년 가까이 되었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지치고 상해 삶의 희망을 놓아버린 지 오래다」


  A씨에게 어떤 일자리가 주어지면 거리를 벗어나 소위 자활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요? 공장? 일반식당? 청소? 아니면 아파트 경비직? 아마도 어떤 일자리가 주어지던 A씨는 당장 그 일을 해나가기 쉽지 않을 겁니다. 오랜 노숙생활로 인한 건강 악화는 A씨에게 일상생활조차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큰 문제일 겁니다. 더군다나 사회와 단절되어 생활한지 5년이라면 물리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 또한 매우 어려운 상태이지 않을까 쉽게 예상해 볼 수 있겠죠. 그럼 A씨는 계속 노숙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A씨에게 맞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물론 일자리 지원 이전에 재활의 시간을 먼저 제공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병원진료 및 입원 지원을 통해 아픈 곳을 치료하고, 이후 요양시설 입소를 통해 재활의 시간을 갖게끔 도움을 드립니다. 그리고 약한 강도와 적은 시간을 들이는 일자리 예컨대 자활근로나 공공근로 등의 근로제공을 시작으로 방을 구하고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지원하는 겁니다. 만약 A씨가 고령과 질병으로 더 이상 일반 상용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공공근로 및 노인일자리를 제공하여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거죠. 그리고 주민지원센터 등의 꾸준한 도움(사례관리 등)을 통해 다시 거리생활로 떨어지지 않게 해드리는 겁니다.


어떤가요? 왜 노숙인에 맞는 일자리(및 복지)지원이 필요한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A씨는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노숙인 중 한명일 뿐입니다. 현장에는 다양한 문제들(주민등록말소, 신용불량, 질병 등 건강악화,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 교육의 부재, 낮은 자존감, 삶의 의미 상실, 노숙인이라는 사회적 편견 등)을 복합적으로 갖고 계신 노숙인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들에게 천편일률적 일자리지원 정책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한계가 큰 정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 센터에서는 서울시 특별자활근로, 서울시 일자리 갖기 사업, 새희망 고용지원센터, 코레일 청소사업단, 공동작업장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일자리 지원정책에 비하면 분명 그 양이나 질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에 그 공급이 매우 부족하며, 그 내용 또한 노숙인에 맞는 일자리가 아닌 이미 정해진 일자리 지원 틀 안에 노숙인들이 맞춰야 하는 등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입니다. 얼마 전 노숙인 복지지원 관계 공무원 중 한명이 "일자리는 결국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제공 될 수밖에 없다" 라고 언론에 인터뷰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일자리 지원정책이 당사자 위주가 아닌 관 주도의 일자리 정책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합니다.



어떻습니까? “노숙인은 왜 노숙을 할까요?” 혹은 “노숙인은 일자리가 있는데도 왜 일을 하지 않나요?” 라는 질문이 사실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 그릇된 편견에서 나온 질문이라는 것을 이시겠는지요. - (표현이 건방졌다면 너그러운 용서를 구합니다)


사실 취업난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노숙인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청년, 장년, 노년 층 등 전 국민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노숙인 및 취약계층에게 너무 많은 공공일자리 및 복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심지어 이를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분들도 보아왔습니다. 노숙 혹은 가난은 지극히 개인의 책임이라는 거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의 책임이 없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위 A씨의 경우처럼 삶의 처음 시작부터 매우 불공평한 시작을 할 수밖에 없던 분들에게 개인의 책임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은 태도일까 생각해봅니다.



「다시서기센터 소식지 2016년 10월호에 실은 글」